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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형 숙박시설 ‘주거’ 금지…현장은 혼란·반발

그바다만큼 2021. 4. 13. 15:11

KBS 부산은 해운대 일대와 북항 재개발지역, 송도해수욕장 일대까지 부산에서 우후죽순처럼 추진되는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했습니다. 사실상 아파트와 비슷한 주거 시설이지만 ‘숙박 시설’로 지정돼 각종 규제를 피하고, 부동산 투기와 난개발을 부추겼는데요. 정부가 이런 생활형 숙박시설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이런 규제가 “늦긴 했지만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현재 ‘생활형 숙박시설’ 거주자들과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 부산은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 천국…“골치 아픈 아파트 대신 ‘생숙’”

부산의 난개발을 상징하는 해운대 ‘엘시티’와 2019년 말 폐업한 해운대의 5성급 호텔 해운대그랜드호텔, 부산항 북항 재개발지역에 들어서는 3천 가구 규모의 대단지 주거시설. 부산 수영강 바로 옆 옛 한진CY 터, 광안리해수욕장 옆 미월드.

이들 지역의 공통점이 뭘까요? 바로 생활형 숙박시설이 이미 건립됐거나 건립이 추진 중인 곳입니다. 대부분 상업용지 등으로 지정돼 있어 현행법으로 아파트 등 주택을 지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죠. 땅값 급등이 예상되는 이른바 노른자위 땅이거나 빼어난 조망권을 자랑하는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부산에서 조망이 좋거나 평지에 있는 등 아파트를 지을 만한 이른바 ‘괜찮은’ 땅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상업용지에 지을 수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사실상 아파트인데 ‘숙박시설’로 분류돼 있어서 바닷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더라도, 다른 건물을 가리더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주차장도 일반 아파트보다 적게 만들어도 문제가 없고 입주민 자녀들이 다닐 초등학교 등 공공시설물을 지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부산에서 생활형 숙박시설이 우후죽순처럼 추진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수도권에 이어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던 부산은 아파트에 이어 생활형 숙박시설로까지 외지 투자자금이 몰렸습니다.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 모텔과 오피스텔은 ‘생숙’을 개발하려는 업자들이 수시로 탐방을 오는 단골 방문지가 되었다고 하죠. 다른 땅보다 싸게 사들여서 생활형 숙박시설을 지어 놓으면 아파트처럼 높은 가격에 분양할 수 있는 구조가 돼 있으니까요.

또 다주택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생활형 숙박시설이 ‘주택’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절세형 투자상품’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생숙’ 시장이 훌쩍 커버린 거죠.

 

■ ‘생활형’ 숙박시설 → 생활형 ‘숙박시설’

국토교통부가 15일 입법 예고한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생활형’ 이 아닌 ‘숙박시설’에 방점을 찍은 겁니다. 제한적으로 ‘장기투숙’을 허용한 시설이지만 실제로는 주거용으로 쓰이고 나아가 투기적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뤄진다는 판단이 나옵니다.

건축법 시행령에는 건축물의 용도가 표시돼 있는데 생활형 숙박시설 역시 ‘숙박업 신고’가 필요한 시설이라고 명시하도록 했습니다. 지금처럼 일반 아파트식으로 분양을 받아 거주하는 건 이제 불법이라는 거죠.

 

 

생활형 숙박시설을 광고하면서 ‘최고 조망권을 자랑하는 주거지’ 등으로 홍보하는 것 역시 불법입니다. 분양광고에는 ‘주택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까지 해야 합니다. 국토부는 또 주택용으로 실거주하는 생활형 숙박시설에 대해 건축법상 이행강제금 부과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그대로 실거주를 하면 불법이라는 거죠.

■ “내가 사는 집이 숙박시설?” 입주민 집단 반발

일반 아파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으로 생활형 숙박시설을 분양받은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레지던스가 숙박시설로 규정돼 있다는 걸 듣긴 했지만 확실한 규정이 없고 또 단속도 없었으니까 실거주용으로 분양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주민들은 “국토부가 생활형 숙박시설을 도입했을 때는 규정을 모호하게 해놓고 인제 와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고 하니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건축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실제 단속에 나서야 하는 구청이나 군청은 난감하다는 반응입니다. 소유주가 실제로 사는지 아닌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위반 여부를 가늠할 구체적인 기준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산의 한 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국토부가 밝힌 개정령 안에는 생활형 숙박시설의 정의만 나와 있고 실제 실거주 여부 판단 등에 대한 기준은 빠져 있다”며 “조만간 국토부에 명확한 지침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생활형 숙박시설 추진 민간업자들 “건설경기 안 좋은데 시행 유예해야”

현재 부산에서 생활형 숙박시설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10여 곳입니다.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했지만 생활형 숙박시설이 추진 중인 사업장도 비슷한 규모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시설은 이제 실거주 목적의 ‘사실상 아파트’가 아니라 숙박업소로 지어야 합니다.

만약 생활형 숙박시설을 개인이 분양받아서 숙박시설로 사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생활형 숙박시설을 모아서 위탁경영을 해야 숙박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곳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활형 숙박시설 30채를 모아 관리단을 꾸린 뒤 그 관리단에서 숙박영업을 하고 그 수익을 소유자들에게 나눠주는 구조죠.

생활형 숙박시설을 지은 뒤 ‘주거용 오피스텔’과 ‘주택’으로 용도를 변경해 거주하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만 건축 허가 기준과 땅의 용도가 다 다르므로 불가능한 곳도 있습니다. 따라서 분양을 포기하는 계약자들도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가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기간은 다음 달 말까지고요. 이때까지 의견 수렴을 거치는데 사업자들은 시행을 미뤄 달라거나 건축심의 중인 건물은 유예해달라거나 하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 시민단체 “뒷북 규제…생활형 숙박시설 자체를 없애라”

이번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시민단체는 난개발을 부르는 생활형 숙박시설 문제를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해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시민단체 부산경남미래정책은 보도자료를 통해 “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생활형 숙박시설의 전입신고를 못 하게 하는 방식으로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분명히 하겠다고 답했는데 이번 개정안은 이 답변보다 후퇴한 내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면 생활에 불편함이 크기 때문에 실거주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인데 국토부가 이를 약속했으면서 지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부산경남미래정책은 더 나아가 “생활형숙박시설이 사실상 주거시설로 변질한 만큼 공중위생관리법을 개정해 생활형 숙박시설 자체를 없애는 등 근본적인 방향까지 고민해야 할 때”라 촉구했습니다.

시민단체의 지적대로 이번 국토부의 건축법 시행령은 ‘생활형 숙박시설’ 문제를 본격적으로 규제하는 첫 번째 정책으로 의미는 있지만, 실효성을 담보하기는 어렵습니다. 국토부가 의지를 보여서 건축물 분양 관련 법령을 재정비하고 실제 실거주 여부를 어떻게 단속할지 촘촘한 지침을 마련해야 ‘생활형 숙박시설은 손쉬운 투기 대상이자 꼼수 아파트’라는 지적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공웅조 기자 sal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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