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만큼 서로 사랑하기
여수 가면 '이것'은 반드시 먹어야 한다. 본문
바다 위를 달린다. 어느새 마음은 시리도록 푸른 겨울 하늘 위로 둥실둥실 떠오른다. 여수에서 고흥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여수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순천을 경유하지 않고 바닷길을 통해 곧바로 고흥을 향해 달려간다.
이 연륙 연도교의 개통으로 인해 여수 고흥 간 거리가 예전에 비해 무려 50여 분이나 단축되고 거리는 54km나 짧아졌다. 이 환상의 바닷길은 77번 국도다. 조발화양대교, 둔병대교, 낭도대교, 적금대교, 팔영대교 등의 교량과 섬 마을을 지나간다. 가는 내내 여행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이곳의 신비로운 비경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여수 낭도, 갱번미술길을 걷다
가장 먼저 찾아간 섬마을은 낭도다. 낭도는 섬의 모양이 여우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여우 호(狐)가 아닌 이리 낭(狼)자를 쓴다.
여수 고흥 간 연륙교에서 만난 4개의 섬 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여산과 규포 두 곳의 마을에 200여 가구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무려 20㎞나 된다. 섬의 중심은 주차장이 있는 여산마을이며 이곳에 최근에 조성된 갱번미술길과 백년도가가 있다.
낭도 초입에서 발열체크 후 섬으로 향한다. 한적한 섬마을 갯가에는 밧줄에 묶인 어선들이 그저 한가롭기만 하다. 빛바랜 목선은 노를 품은 채 이따금씩 삐걱대며 존재감을 알리는가 싶더니 관심을 두지 않자 어느새 잠잠해졌다.
갯가를 따라 나지막한 마을 집들이 옹기종기 기다랗게 펼쳐져 있다. 섬섬여수. 낭도 갱번미술길이 시선을 붙든다. 오래된 시골집의 무너진 담장을 보수하여 그곳에 주민들의 추억과 삶을 작품으로 담았다.
슬레이트 지붕에는 골마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았다. 세찬 갯바람을 잠재우기 위한 굵은 밧줄이 그 위를 휘감고 있다. 마을 언저리에서 마주한 오래된 가옥도, 촘촘히 쌓아 올린 돌담도 하나의 작품으로 다가온다. 양지 녘에 내리쬐는 햇볕은 오늘따라 참 따사롭다.
녹물이 묻어나는 컨테이너와 시멘트 블록의 대비가 이채롭다. 블록 아래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 조각이 물결을 이룬다. 그 물결 위로 바다 물고기 떼의 힘찬 유영이 이어진다. 서양화가 심은경씨의 동백꽃 <청렴>에는 이곳 섬사람들의 애틋한 사랑이 절절히 묻어난다.
마을 대문에 그려진 환하게 미소 짓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캐리커처를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문득 세상살이 힘들 때 빈 몸 그대로 여수로 오시게'라고 외치는 신병은 시인의 <여수 가는 길>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백년도가 젖샘막걸리와 서대회무침
갯가 드넓은 공터 한 켠에는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자리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일까, 문을 닫았다.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다시 마을길로 접어들자 여산민박집과 낭도주조장이 보인다. 주조장 백년도가는 올해로 114년째다. 그 명맥은 4대째 이어지고 있다.
낭도 도가의 젖샘막걸리는 개도막걸리, 율촌막걸리와 더불어 여수 지역에서 꽤나 알려져 있다. 여수 토속음식인 서대회와 낭도 젖샘막걸리의 조화는 천하일품이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술도가집 며느리가 되었다는 이곳 안주인의 음식 솜씨는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빼어나다.
서대회무침에 뜨신 밥을 쓱쓱 비벼내 입이 미어지게 한술 떠보라. 첫술에 '바로 이 맛이야!'라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하여 어떤 이는 여수에 와서 서대회 안 먹어보고 돌아가게 되면 여수 여행은 무효라고 했다.
막걸리 식초에 맛깔나게 버무려낸 서대회무침을 기본으로 손두부, 도토리묵, 해초비빔밥도 맛볼 수 있다. 이들 음식에 젖샘막걸리 한 잔이 더해지면 행복밥상이 된다. 금상첨화다. 섬마을이 비교적 한산한 데 비해 유독 이집으로만 사람들이 오간다. 하기야 허물없는 진솔한 상차림으로 이렇게 입맛을 즐겁게 해주니 미식가들이 찾을 수밖에.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속에 여행의 꿈을 품고 살아간다. 그걸 반증이라도 하듯 코로나19가 끝나면 많은 이들이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늘 녹록지가 않다. 아직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바쁜 삶의 연속선이지만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잠시 여수 낭도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봤다. 섬은 늘 그 자리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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