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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려간 친구가 잡아뗄 때 소송없이 해결하는 법 본문
친구가 급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리 큰돈은 아니다. 기꺼이 빌려주었다. 몇 달 뒤 친구가 조금만 더 빌려달라고 한다. 이번에도 큰돈은 아니다. 그렇게 몇 번 돈을 빌려주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진다. 처음 빌려주었던 돈도 아직 돌려받지 못했고, 언제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이제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흔히 생각하는 것은 형사고소다. 돈을 꼭 갚겠다고 약속하고 돈을 빌려 갔는데 아직 갚지도 않은 데다 뻔뻔하고 무책임한 태도까지 보인다면 이것이야말로 사기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민사소송과는 달리 형사고소를 하면 수사기관에서 주도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니 경제적으로나 시간상으로 부담이 적다는 것도 고소를 고려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일단 고소를 하면 상대방이 수사를 받는 것에 압박을 느끼고 돈을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고소를 가장 먼저 고려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턱대고 고소를 했다가는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무분별한 고소로 인해 수사기관에서 정작 중요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사기로 고소를 하기 전에 어떤 경우 사기가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사기는 다른 사람을 속여 어떤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속이고, 속는 행위가 있었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단순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는 속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 판례의 표현을 빌리면, 민사상의 금전대차 관계에서 그 채무불이행 사실을 가지고 바로 차용금 편취의 범의를 인정할 수는 없으나 피고인이 확실한 변제의 의사가 없거나 차용 시 약속한 변제기일 내에 변제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변제할 것처럼 가장하여 금원을 차용한 경우 편취의 범의를 인정할 수 있다.
나아가 돈을 빌려줄 때 상대방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돈을 제때 갚지 못하거나 아예 갚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경우에도 사기죄가 성립하기 어려울 수 있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신용상태를 인식하고 있어 장래의 변제지체 또는 변제불능에 대한 위험을 예상하거나 예상할 수 있었다면, 피고인이 구체적인 변제의사, 변제능력, 거래조건 등 거래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을 허위로 말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이 그 후 제대로 변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만 가지고 변제능력에 관하여 피해자를 기망하였다거나 사기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바로 그런 의미다.
또 돈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여러 악재가 겹쳐서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법원에서도, 설사 기업경영자가 파산에 의한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고, 계약이행을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었을 때는 사기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결국, 상대방을 사기로 고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상대방이 단순히 돈을 갚지 않았다는 것을 넘어 고의로 자신을 속였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함을 유의해야 한다.
한편 형사고소를 할까도 생각해 보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는 사람도 많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형사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민사로 해결할 문제라고 판단하는 경우. 혹은 형사고소 이후 자신도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싫은 경우. 또는 형사고소를 하면 상대방과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에 차마 고소를 하지 못하는 경우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 하는, 마음이 여린 사람일수록 형사고소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저런 이유로 형사고소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민사적인 조치라도 취하는 것이 좋다. 우리 민법에서는 소멸시효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빌려준 돈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일정 기간(일반적인 채권의 경우는 10년) 이 지나면 그 뒤에는 돈을 강제로 돌려받을 방법이 없게 된다.
이때 민사소송을 정식으로 제기할 수도 있지만 지급명령이라는 제도를 활용하면 편리하다. 지급명령을 전자소송으로 진행하면 인터넷으로 서류 제출 등을 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더욱 아낄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이 채무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라면 더욱 부담이 덜하다. 상대방이 지급명령을 송달받은 때로부터 2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되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민사조정을 신청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는 부담스럽고, 가급적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경우라면 민사조정제도를 활용하면 좋다. 물론 돈을 갚지 않던 사람이 조정한다고 해서 갑자기 돈을 갚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아무래도 전문성을 갖춘 조정위원이 절차를 주도하기 때문에 당사자끼리만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특히 조정신청을 하면 소멸시효가 중단되고, 또 합의가 성립되어 합의된 사항을 조서에 기재하게 되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게 된다는 점은 조정의 큰 장점이다.
빌린 돈도 못 갚는 사람에게 다른 재산이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만에 하나 채무자 명의로 된 부동산이나 예금 등의 재산이 있다면 본 소송과 별도로 이에 대해 가압류를 하는 것이 좋다. 가압류해 두지 않은 상태에서 채무자가 재산을 처분해 버리면 나중에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어 현실적으로 돈을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빌려준 돈을 받지 못했을 때 할 수 있는 법적 조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증거가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돈을 빌려주었다는 증거조차 없다면 법의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 따라서 돈을 빌려줄 때는 가급적 현금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은행 계좌를 통해 송금하고, 할 수만 있다면 간단하게라도 차용증을 작성하는 것이 좋다. 상황이 급해 아무런 자료도 남기지 못했다면 나중에라도 문자 메시지나 대화녹음 등을 이용하여 돈을 빌려주었다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
상대방이 돈을 받은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돈을 받은 것은 인정하면서도 빌린 것이 아니라 예전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받은 것, 즉 증여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또 돈을 여러 사람한테 수차례 빌리다 보면 그것을 세세하게 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빌려준 사람은 기억해도 빌린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빌린 돈의 액수를 놓고 갈등이 깊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증거는 반드시 법적인 조치를 취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 사이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 돈을 빌려줄 때는 좋은 마음으로 빌려준다. 그 마음이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쓸건 쓰고, 남길 건 남기자.
정세형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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