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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플 라이프>,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바다만큼 2021. 4. 16. 14:48

우연히 돌린 TV 채널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서는 영화평론가 이동진님이 유퀴저로 출연해 일과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이 그려졌다.

유재석은 "25년 정도 영화 평론을 했는데 몇 편의 영화를 했냐"고 물었고 이동진은 "대략 1만편정도 했다. 가장 많이 봤었을 때는 제가 미국에 1년정도 연수를 갔었다. 그 때 1년동안 1,017편을 봤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유재석은 "막상 좋아하는 걸 일로하면 좋을 것 같지 않다"며 물었고 이에 "이게 사실 결혼하고 비슷하다. 아무리 사랑해도 환상이 깨진다고 한다. 어차피 환상이 깨질 거라면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하는 사람하고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야 권태에서 버틸 수 있는 것 같다"며 평론가다운 모습을 보였다.

유재석은 "죽기 직전 딱 한 편의 영화만 볼 수 있다면 어떤 영화를 선택하겠냐" 물었고 이동진은 "죽기 직전이면 영화 안볼 것 같다"고 말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매번 달라지지만 '원더풀라이프'를 볼 것 같다. 그 영화가 한 가지 질문을 강하게 한다. '당신이 다음 세상으로 가져갈 단 하나의 기억은 무엇이냐' 이런 질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걸 선택하면 나머지 기억은 사라진다는 의미다. 주제가 흥미로워 한 번 권하고 싶다"며 영화를 선택했다.

그 방송은 본 후 넷플릭스에서 영화 원더풀라이프를 봤다,

 


원더풀 라이프 (Wonderful Life, 1998)


 

 

"내 인생에서 단 한 장면만 기억할 수 있다면?"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진: 이우라 아라타, 오다 에리카

장르: 판타지, 드라마

러닝타임: 1시간 58분

제작 연도: 1998년

 

기차역 안 대합실처럼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이지만 이곳은 삶과 죽음을 잇는 ‘림보’다. 림보에 머무는 망자들은 일주일 안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고르고, 오직 그 기억만을 간직한 채 천국으로 향해야 한다.

일주일간 함께 하는 망자들의 가장 행복했던순간을 찾아내기 위해서 도와주는 직원들과의 인터뷰하는 게 영화의 절반이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그 기억을 영상으로 재현해 내는 직원들의 이야기가 나머지 영화의 절반이라 재미로 볼 영화는 아니다.

 

 

‘원더풀 라이프’는 이 같은 독특한 설정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그려내며 삶의 진리를 담담하게 깨닫도록 한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망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고심 끝에 소중한 기억을 고백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선택을 번복하는 인물도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떠올린 장면은 대부분 인생에 몇 안 되는 엄청난 이벤트가 아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다. 옷깃 스치듯 지나 보낸 날들이 돌아섰을 때 평생의 기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반복되는 인터뷰 형식을 취하며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의 인생에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 영원히 머물고픈 순간이 존재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는 것만으로 우리의 하루는 한층 더 ‘원더풀’해진다.

 

 

 

오래된 건물, 사람들이 하나하나 찾아온다. 이 곳은 죽은 이들이 저세상으로 가기 전 일주일을 머무는 곳, 림보입니다. 이 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살아생전 추억 중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림보의 직원들은 세트장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죠. 일주일이 지나는 날, 사람들은 본인의 소중한 기억을 감상하며 저세상으로 갈 수 있다. 저 세상에서는 그 소중한 추억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직원들의 업무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과 면담을 하는 것, 추억을 재연할 수 있는 세트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스물두 명의 사람들이 림보에 방문한다. 네 명의 직원들은 각각 담당할 사람들을 배정받고, 면담을 시작합니다. 곧바로 소중한 추억을 고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고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릴 적 오빠가 선물해준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던 그 순간을 이야기하는 할머니. 비행기를 조종하며 구름 사이를 지나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젊은 남자. 전차를 타고 선선한 바람을 맞던 그 때를 이야기하는 나이 든 남자. 정신이 아홉 살 때에 머물러 있어 어떤 추억이 아닌 벚꽃이 흩날리는 봄을 이야기하는 할머니. 수많은 배신을 당했지만 그렇게도 사랑했던 한 남자를 이야기하는 중년의 여성. 디즈니랜드에 가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을 이야기하는 중학생 여자아이 등.

 

 

 

그러나 70세의 평범한 와타나베 할아버지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에게는 70년의 기억을 담은 비디오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고만고만한 인생, 모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는 인생이라는데, 그런 할아버지도 림보에서의 마지막 날, 아내와 공원에서 이야기를 하고 영화를 보러갔던 평범한 하루를 고르게 되죠.

그러나 영영 선택을 하지 못한 21살의 청년도 있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되냐,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되냐 이야기하는 이 청년은 결국 끝내 선택을 하지 못하죠. 선택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림보에 남아 림보 직원이 된다.

 

림보 직원으로 있던 모치즈키 또한 선택을 하지 못해 남아있던 남자였는데요. 그는 사람들을 모두 보낸 그날 오후, 와나타베 할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다가 그에게 남긴 편지 하나를 읽게 된다.

사실 와타나베 할아버지의 아내 교코에게는 끝내 잊지 못한 죽은 정혼자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모치즈키였다는 것. 교코가 림보에 방문했던 때의 영화 기록을 찾아본 모치즈키와 보조 시오리. 교코가 소중한 추억으로 고른 순간이 바로 공원에서 모치즈키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순간임을 알게된다.

 

 

모치즈키는 혼자 공원 세트장에서 가만히 앉아있다가, 끝내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을 선택한다. 모치즈키가 떠나면 모든 것을 잊을거라 서운하게 생각하는 시오리. 모치즈키는 세트장 그 의자에 앉아있던 그 순간을 선택한다. 촬영하는 모치즈키의 눈 앞에는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림보의 직원들이 한눈에 담겼죠. 모치즈키의 영화 감상이 끝난 후, 모치즈키는 저세상으로 사라졌다.

 

이제 림보에서는 또다른 일주일이 시작된다. 시오리는 보조에서 정식 직원이 되었고, 이제 새로운 사람이 면담을 하러 문을 두드리네요.

 

 

"달은 참 재밌죠?

실제 모양은 변하지 않지만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보이니까요."

 

영화 속에서 시오리에게 직원 나카무라가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못알아들었으려나? 라고 말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나카무라. 시오리 또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선택을 안 하고 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몰라요. 시오리는 이제까지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싫다고 한다.

그래서 모치즈키가 떠나는 것도 너무나 슬퍼하죠. 모치즈키와 달리 시오리는 아직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한다. 모치즈키는 교코가 선택한 추억 영상을 보고 깨달았다.

내가 알지도 못한 사이,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 누군가에게 내가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것. 달은 똑같은 달이지만 빛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되듯, 인생도 같다. 내가 보기엔 초승달인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보름달로 보이기도 하듯이, 별 볼 일 없던 내 인생의 조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부분이 되기도 하니까. 또한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겠죠.

결국 모치즈키가 선택한 소중한 순간은 나를 생각해준 사람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장면, 나의 인생을 행복하게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50년이 지나서 내가 누군가의 행복었다는 사실을 알았어.

정말 멋진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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